HJKN 2015. 3. 1. 17:28

 

 

 

 

 

 

 

 

 

 

 

 요즘, 적당히 '태평'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곧잘 하면서, 늘 흐린 날씨에 자주 비가 내리는 아일랜드의 그들만의 대처방식이 생각이 났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비가 자주 오고 흐린 날이 많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쓴 현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비가 퍼붓지 않는 이상, 비 바람 따위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빗방울이 얼굴을 때려도, 옷을 적셔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처음 홈스테이를 할 때였다. 빨래를 마당에 널어놓았는데, 몇 시간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층 방에 있던 나는 마당으로 달려가 빨래를 걷을 참으로 쿵쿵거리며 내려왔지만, 마당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거실에서 멈춰 섰다. 바로 거실에 있던 다른 가족들은, 널어놓은 빨래가 온통 비에 젖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다시 날씨가 맑아져서 마를 거니까 그대로 두라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금은 충격이기도 했다.

나 혼자 온갖 호들갑을 다 떤 모양새였다.

그들의 태평함이 더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젖어가는 내 옷가지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들끓기도 했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능청함 앞에서 내 빨래만 쏙 걷을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비가 멈추고 날씨는 더 맑아졌다. 그리고 내 옷도 깨끗이 말랐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나마 들끓었던 내 감정도 무색해졌다.

설령, 비의 산성 성분이 내 옷에 스며들었다 한들, 내일 입으려고 세탁한 옷이었든,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무신경함 또는 무심함이 나에게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도 아일랜드에서 느긋함을 조금 배울 수 있을까 했지만 본성, 습관이라는 것은 절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먼저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집에 널어놓은 빨래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고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괜히 스트레스는 높아진다.

놀러 가기로 한날에, 갑자기 비가 온다면 기대에 실망해 한없이 속이 상하기도 한다. 실망감에서 나오는 감정의 에너지 소비는 생각보다 크다.

 

물론 가끔은 그들의 이런 끝없어 보이는 태평함 질리기도 한 건 사실이다. 약속시간을 밥 먹듯 어기는 그런 태평함 또한.

그러니까 '적당한' 태평함을 갖고 싶다.

사실 그 '적당함'을 어느 정도로 봐야 하는 지 어렵지만.

굳이 쓸데없는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내 자신이 편안해질 수 있는 뭐, 그런 거.

경우에 따라선, 그게 정말 느긋함인지, 태평함인지, 좀 더 얹어서 이기심인지. 미묘한 경계에 걸쳐있는 것 같기도 하다.